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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질 수 없는
캐리 캘리
X
브루스 웨인
X
라라 엘
by. 우유빙수
주제: NTR
☆다크나이트 마스터 레이스 이후를 상상하고 썼습니다.
★인물의 죽음과 부활 묘사 주의. 약간의 정사 묘사가 있습니다.
과거에 두껍고 까만 안경을 쓰던 소녀는, 울새의 붉은 가슴 깃 색보다 밝은 머리카락 사이에 하얗게 바란 머리카락이 드문드문 섞인 중년이 되었다. 짧은 반바지를 입고 거대한 박쥐를 따라다니던 시절이 너무나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다이나믹 듀오의 명성을 다시 드높였던 건 그였다.
주름지기 시작한 눈가에 묻은 피로를 손가락으로 털어내고 다시 모니터를 유심히 바라본다.
모니터에는 그의 멘토이자 상사였던 브루스 웨인이 어떤 여자와 함께 호텔로 들어가고 있는 게 보였다. 10분 전까지만 해도 주점에서 술잔에 코를 박고 있더니 갑자기 옆자리를 꿰차고 앉은 여자의 한두 마디에 홀랑 넘어가 졸졸 따라가고 만다.
그의 나이는 이미 팔십이 넘었지만, 모니터 속의 얼굴은 아직 앳된 스물의 청년 같다.
아니 이건 그가 브루스의 나이를 알기에 그렇게 느끼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이제 고등학생 정도 되어 보인다고 할 것 같다.
그럴만한 게 브루스는 슈퍼맨 클락 켄트의 손에 한 번 라자러스 핏에 담가져 젊음을 되찾은 뒤 전성기 못지않게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그러나 시대는 점점 변하고 사람들의 인식도 변하는 가운데, 귀환한 배트맨은 더 복잡해진 신념들과 사회의 규범, 과거의 것과 현재의 것과 부딪치며 고담을 수호해왔다. 그중에는 세월의 흐름이라 쳐도 브루스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있었으나 캐리가 옆에 있어 어느 정도 감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다시는 브루시로 살지 않아도 좋고 온종일 배트맨으로 있어도 괜찮은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던 브루스의 의지인지, 아니면 부활하여 젊어진 제 삶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한 그 나름의 자살방법이었는지, 밤낮을 가리지 않고 활발히 활동했고. 그 결과 첫 번째 부활에서 2년 뒤 또다시 죽음을 맞이했다.
캐리가 상복을 갈아입기도 전에 슈퍼맨은 그를 또다시 라자러스핏에 넣어 부활시켰고, 브루스는 나를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할 생각이냐며 슈퍼맨의 멱살을 잡고 불같이 화를 냈다. 슈퍼맨은 슬픈 얼굴로 이제 이 지구에 남은 인간 친구가 많지 않다며, 자신이 죽는 그날까지는 살아있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말했고 브루스는 크립토나이트 배터랭을 가져와 이미 한 번 선을 넘었는데 또 못 넘을 것 같으냐며 협박했다.
그 협박이 무색하게 브루스의 죽음은 3개월 뒤에 찾아왔고 캐리가 시신을 잘 거둬들여 이틀 정도 케이브에 두자 캐리가 패트롤을 돌러 나간 사이 슈퍼맨이 그의 시신을 가져가 라자러스핏에 담갔다.
부활하자마자 브루스는 부디 이번 죽음은 그저 그것이 나의 운명이려니 하고 되살리지 말아달라 부탁했으나, 그 간청에도 그를 매번 되살려냈고, 열 번째 자살 같은 사고사에서 갈가리 찢긴 시신을 고이 다 직접 꿰매 부활시켰을 때 브루스는 결국 미친 상태로 클락의 가슴을 크립토나이트로 찔렀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몇 번이나 쓰러진 클락을 찔러댔고 캐리가 결국 주먹으로 브루스를 때려 강제로 멈출 때까지 난도질이 이어졌다.
다행스럽게도 오랫동안 햇빛의 축복을 받은 클락은 죽지 않았으나, 어두운 케이브에서 햇빛도 받지 못하고 계속 난도질당한 탓에 캐리가 그를 햇빛 아래로 데려갈 때까지 피투성이가 되어 기절해있었고, 브루스는 제 친우를 미쳐서 죽일 뻔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 충격을 받은 건 클락도 마찬가지였는지 클락은 이후 브루스앞에 나타나지 않았고 캐리는 조용히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보기만 했다.
이제 캐리보다 훨씬 젊어진 브루스의 얼굴에서는 깊은 피로가 촘촘히 깔려 그를 슬프고 고통스럽게 만들었고. 결국, 제 코스튬을 모조리 유리관 안에 넣은 뒤 캐리에게 네게 이런 짐을 지워 미안하다며 울먹였다.
자신은 더 카울을 쓸 자격이 없다는 그의 등을 가만히 쓸어내리며 좋은 멘토였다며 몇 번이고 도닥였다. 그 손길이 어딘가 음습한 구석이 있었으나 브루스에겐 그것을 느끼지 못했고, 안다 해도 입 밖으로 내밀 수 없기에 굳은살투성이 손에 얼굴을 비비며 눈물지었다.
그러다 한 달 전 브루스가 다시 죽었다.
그의 부모가 죽었던 크라임엘리의 골목 어딘가에서 캐리가 기분전환이라고 하고 오라며 끊어준 조로 리메이크 영화를 보고 아지트로 돌아가다 강도를 만나 재수 없게도 총에 맞아 죽었다.
브루스는 이게 마지막일 거라고 믿었다. 더 이상 고담에 자신은 없을 거라고.
그러나 그 믿음이 무색하게 다시 부활했다. 그의 멘토였던 캐리가 슈퍼맨의 행적과 여태껏 라자러스핏이 어디서 생성되고 어떻게 나오는지 끊임없이 연구한 덕에 그는 다시 이미 세상을 떠난 수많은 동료와 로빈들과 부모님의 품이 아닌 차갑고 서늘한 이승으로 끌려나왔다.
갓 스물을 맞이한 것 같은 아주 젊은 모습으로 되살아났다. 그의 원래 나이를 고려해본다면 과한 회춘이다.
죽음에서 깨어난 브루스는 미칠 것 같았다. 클락을 원망하려고 했는데 눈 뜨고 자신 곁에 있던 것은 클락이 아닌 캐리였다. 한참 동안 클락을 찾던 브루스에게 캐리가 당신을 살린 건 자신이라고 담담히 고백하자, 이제 흰머리가 드문드문 난 제 멘티에게 벼락처럼 화를 냈다.
“죽은 것은 죽어있는 것이 옳아! 너희는 대체 이 법칙을 왜 자꾸 어기는 거냐!”
그 순간 캐리는 무엇에 씐 것인지도 모른다. 박쥐의 망령이 쓰인 것일 수도 있고 그가 만들어놓은 배트맨의 그림자가 브루스에게 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박쥐는 아직 너를 놓을 수 없다며 캐리의 얼굴로 으르렁거렸다. 캐리는 코스튬이 든 유리관 앞까지 멱살을 잡고 끌고 가 억지로 카울을 씌우고 거울을 들이 내밀었다.
“보이나? 당신이야. 당신이 만들고 시작한 박쥐지. 인제 와서 놓을 수 있을 거 같아?”
“캐리!”
“도망 못 가 브루스 웨인. 아니 배트맨. 세상에 브루스 웨인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니 이제 계속 배트맨으로 있을 수 있는데 뭐가 문제지?”
그 모습이 그렇게 두려울 수 없었다. 희끗희끗한 붉은 머리가 불처럼 느껴졌다. 불타는 지옥 속에서 박쥐가 그를 움켜잡는다. 드물게 잔뜩 겁에 질린 어린 얼굴을 보자 캐리는 멱살을 쥐었던 손을 풀고 가만히 과거의 그가 오래전 잠들어있던 그에게 조심스레 다가와 그랬듯 검지와 중지로 뺨을 가만히 쓸어내리며 말했다.
“당신은 좋은 사람이에요 브루스.”
한결 누그러진 기세에 브루스 역시 숨을 몰아쉬며 진정하려 애썼다. 주근깨가 난 소년 같은 소녀는 어디로 가고 그곳에는 붉은 머리카락의 저가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도구가 있어서 사용했어요. 나는 아직 당신을 보내고 싶지 않으니까요. 난...클락을 이해해요. 고담도. 나도. 그도. 우리는 당신이 필요해요.”
“하지만 나는...”
“조금만 더 있어줘요.”
몸이 서로 맞닿았다. 애절하게 감싸 안은 팔의 떨림에서 고독함이 느껴진다. 항상 혼자서 일한다고 말했지만 돌이켜보면 정말 수많은 이들이 그와 함께했었다. 캐리는 어땠는지 모른다. 동료가 있었던가. 친구는 있었던가. 소중한 것을 많이 만들자고 먼저 이야기한 건 자신이었는데.
“이제 슬슬 너도 네 후계를 들이는 게 좋지 않겠니.”
“계속 브루스가 있어주시면 안 되나요?”
“....”
다음날 브루스는 조용히 아지트를 나갔다.
다만 고담은 벗어나지 않은 것인지 못한 것인지, 종종 패트롤 나간 캐리의 눈에 브루스가 걸리곤 했다. 가짜 신분에 거짓 이름으로 살고 있지만 브루스 웨인의 배트맨을 고대로 빼다 박은 채 자라난 캐리는 브루스의 변장을 쉽게 알아챘는데. 다만 여기서 더 도망갈까 봐 발견하지 못한 척하고 있다.
캐리는 브루스가 스스로 돌아오길 바랐다.
제 마음대로 생을 내려놓고 쉬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절망해있는 그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치유되길 바라며 멀리서 지켜보기만 했다. 그러나 캐리 역시 인간인지라 약해진 브루스를 보자 욕심이 났다. 지금의 그라면, 그가 오랫동안 소망한 것을 이뤄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변장을 하고 브루스에게 접근했다.
하루하루 의욕 없이 살아가며 사회 속에 파묻히려는 그에게 다가가 애정을 베풀고 주고 싶었던 것을 아낌없이 주었다.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어떻게 하면 좋아할지 모두 손바닥에 적혀있는 것처럼 훤히 보였다.
그럼에도 브루스는 종종 예상 밖의 행동을 했는데 그 중 하나가 캐리는 브루스에게 연인을 기대했으나 젊어진 브루스는 변장한 캐리의 모습에서 어머니를 찾은 듯했다.
썩 마음에 드는 건 아니지만, 항상 상하 수직에 가까운 관계에서 변한 것으로 만족하려 했는데 그들을 지켜보는 눈이 있는 걸 캐리와 브루스는 몰랐다.
브루스는 캐리가 있는 케이브로 돌아오지 않았지만, 어느 날부터 변장한 캐리에게도 찾아오지 않기 시작했다. 혹시 자신이 브루스를 속이고 있던 게 들킨 건가 싶어 긴장하며 브루스의 행적을 이 잡듯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너무 그를 풀어놓았던 건지도 모른다.
조사결과 이틀에 한 번씩 누군가를 만나는 걸 알 수 있었다. 이름도 모르고 무엇을 하며 사는 사람인지 모르지만 브루스의 옷에 부착한 옷에서 희미하게 흐느껴 우는듯한 신음 사이사이로 라라 라고 부르는 이름을 들었을 때 머리에 한 대 얻어맞는 기분이 들었다.
캐리가 아는 그 라라가 맞는다면 이제 와서 왜 브루스에게 접근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버지에 대한 보복인가. 그러나 라라가 이미 10년 넘게 클락과 만나지 않는 걸 알고 있다. 서로의 시크릿 아이덴티티 때문이기도 하지만 라라는 클락보다 다이아나의 손에서 큰 아마존에 가깝기에 이제와서 아버지 운운하는 것은 우습지 않은가.
브루스 역시 라라를 모르지 않을 텐데 어째서 한 침대에서 그러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더 캐내 보려 했지만 라라가 알아챈 것인지, 아니면 브루스가 알아챈건지 도청기는 파열음과 함께 더 이상 제구실을 하지 못하고 어딘가에 떨어졌다.
그리고 오늘,
술에 취해 끌려가듯 호텔로 들어가는 것은 브루스와 라라다. 라라역시 다른 사람인 척 하고 있으나 타고난 아마존의 당당함이 발끝에 실려있고, 크립토니안과 아마존의 혼혈인 탓에 걷는 것보다 하늘을 나는 게 더 익숙한 탓에 살짝 끄는듯한 걸음걸이를 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캐리가 호텔에 도착한 것은 두 시간 뒤였다.
그보다 일찍 도착할 수도 있으나 가는 도중 배트우먼의 발목을 잡는 사건들 때문에 빠르게 도착하지 못했다. 그런고로 호텔 창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는 이미 짓무른 눈가와 정사의 흔적을 고스란히 드러낸 채 기절하듯 잠든 브루스와 이미 올 것을 알았다는 듯 오만한 얼굴로 캐리를 맞이하는 라라가 있었다.
“좀 늦었네 배트우먼.”
“어른 공경하는 법은 안 배웠나 보지 라라 엘?”
“널 공경해달라고?”
아마존이자 하프 크립토니안인 라라는 제 아버지보다 늙는 속도가 느리기에 캐리가 막 로빈이 되었을 때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고, 브루스는 라자러스핏의 부작용으로 지나치게 젊어져 버려 셋 중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건 캐리쪽이다.
“넌 브루스에게 관심 없었을 텐데.”
“늙어빠진 인간보다 나은 상대는 얼마든지 있지. 다만 어머니가 그러더군. 크립토니안들은 어딘가 박쥐에게 끌리고 마는 그런 게 있다고.”
라라가 잠든 브루스의 머리카락을 쓰다듬는 손길이 강아지나 새끼고양이를 쓰다듬는 것과 비슷하다.
“늙었을 때는 몰랐는데 젊어지니까 꽤 내 취향인데? 물론 처음에는 이 남자가 아버지를 난도질한 것과 그걸 방관한 너에 대한 약간의 벌을 줄 생각이었는데... 하다 보니 좀 즐거워졌어. 어머니도 아버지 아니었으면 브루스를 고려하려 했다고도 했으니 그 핏줄이 어디 가겠어?”
“라라!”
쇳소리가 섞인 것 같은 날카롭고 낮은 성난음성이
“너 정말 브루스랑 똑같구나. 자각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브루스랑 너랑 굉장히 닮았어. 브루스가 젊어지기 전, 네가 대신 배트맨을 했던 게 이해가 가.”
라라는 진심으로 즐거워 보였다.
“네가 변장하고 브루스 만나는 거 브루스가 알고 있는 거 알아?”
“...”
“브루스가 아버지의 일에 대해 미안하다고 한거 알고 있어?”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언제부터 라는 물음은 나오지 않는다. 아마 캐리가 브루스를 알아보듯 브루스 역시 캐리를 알아봤고, 제 파트너의 행동에 대해 항상 그랬던 것처럼 묵인하고 있었을 게 뻔했다. 그러나 라라와는...
“계약했어.”
“무슨...”
“자기가 할 수 있는 건 다 해줄 테니 만일 자신이 죽으면 내가 제일 먼저 와서 시신을 흔적도 없이 태워달라고.”
자고 있어야 할 브루스의 어깨가 움찔했다. 자다 깬 것인지 처음부터 잠 따윈 자고 있지 않았던 건지 알 수 없으나 그는 분노 서린 눈으로 브루스를 바라보았다.
“아버지도, 너도 어리석지. 살아만 있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 안 그래 브루스?”
대답은 없었다.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긴장감이 객실을 가득 메웠다.